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나를 찾으라”는 명령을 반복해서 하십니다(4, 6, 8절). 이 명령은 바로 앞 4장의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아모스 4장 4-11절에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표현이 6, 8, 9, 10, 11절에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계속해서 그들을 징계하셨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1:5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라고 물으셨던 바로 그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들의 죄 가운데 거하며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은 ‘사는’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언급된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그들 나름의 종교 생활을 위해 그들이 찾았던 장소였습니다. 그런 종교적 활동을 통해 그들은 어느 정도 자기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면서(7절) 행하는 그런 종교적 행위는 하나님을 찾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더 모욕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 어떤 제사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께 어떤 봉사를 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모든 종교들은 행위를 강조합니다. 무엇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도 좋습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고 하는만큼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에 우리에게는 더 어려운 요구입니다. 나를 먼저 버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는 믿음보다 행위가 더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의 행위를 요구하셨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할 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영적 상태에 관계 없이 항상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찾아야 삽니다. 우리가 참된 삶을 누리려면 언제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지금 응답해야할 것입니다.
오늘의 한 구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암 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