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믿었더라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충성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어도 되는 어려움들이었습니다. 특히 바울의 배경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안에서 엘리트로 성장했던 사람입니다. 능력도 있었고 열심도 있었습니다. 아마 차세대 유대교의 지도자로서 인정 받았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대로 있었다면 바울의 삶에는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났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잃을게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진게 많은 사람이었기에 잃을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버렸습니다.
그랬으면 잘 살기라도 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처음 구원 받고 난 이후부터 바울은 계속해서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가 말한 어려움들은 다 기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그조차도 일부였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가 아니면 경험하지 않았을 어려움들을 셀 수 없이 경험했습니다.
어찌보면 생색내기 좋은 경험들이기도 합니다. 부풀리고 과장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더 많은 후원을 받거나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워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금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모함 때문에 바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 바울은 어떤 면에서는 이런 고난을 진짜 고난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진짜 고난은 교회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그는 그것이 “날마다 그의 속에 눌리는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전도 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들은 바울의 좋은 동역자들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어려움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바울처럼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이런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있습니다.
고후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바울은 성도들의 문제를 그저 제 3자로서 염려만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아픔을 함께 느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족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애타는 마음으로 염려했습니다. 바울은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했기에 이런 내면의 어려움을 계속해서 감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울의 이런 면모를 좀 새롭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때로는 너무하다할 정도로 맞는 얘기만 하는 소위 AI같은 느낌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교회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런 사람들이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이런 일꾼들이 더욱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