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자신이 오래 사역했던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17절). 예루살렘으로 떠나면 그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25절), 유언과도 같은 작별 인사 및 당부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의 이 마지막 말은 성도라면 누구나 (특히 교회의 사역자라면 더욱이) 하고 싶은 고백일 것입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인내하며 주님을 섬겼고(19절), 무엇이든 유익이 되는 것, 하나님의 뜻을 공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20-21, 27절). 그는 담대함과 겸손과 눈물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19, 20절). 그래서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26절). 파수꾼으로서의 책무를 다 했다는 말입니다. 파수꾼의 임무는 위험을 알리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위험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서도 위험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듣지 않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파수꾼이 위험을 알리지 않았다면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파수꾼에게 있습니다(겔 33:1-9). 이런 면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기 생명보다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24절).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에 대해서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고전 9:16).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다는 사실입니다(고후 5:14).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바울의 헌신은 그리스도의 그를 향한 헌신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도 바울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동일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마찬가지로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동일하게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그분께 죽기까지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하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울처럼 살지 못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풍성하고 강력한 사랑을 충분히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가 이 사랑을 깨닫기를 기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엡 3:18-19).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래서 더 사랑하고, 더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