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바울의 반응은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 같습니다.
먼저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약함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연약한 부분은 아니었음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10절에서 약함과 함께 언급한 것들은 능욕, 궁핍, 박해, 곤고입니다. 즉, 바울이 말하는 약함은 재능의 부족이나 성격적 결함 혹은 기절적 특징과 같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말씀을 적용할 때 그런 것들까지 포함시킬 수는 있겠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족함을 채우거나 성장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이 말씀을 변명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 어차피 이런 사람이고 이런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니 난 어떤 변화나 성장도 필요 없어’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나태함이고 불순종일 뿐입니다. 사실 그런 논리라면 더 죄 가운데 거하는게 좋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바울의 약함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바울에게 실제적인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앞에서 읽은 말씀들만 생각해 봐도 바울은 ‘엄살쟁이’가 아닙니다. 웬만했으면 바울도 그냥 참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고 아마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바울의 생각에는 그것들이 없는 것이 더 사역에 유익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그래서 3번이나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기도에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참 차갑게 느껴지는 응답입니다. “바울아, 참 힘들지. 그래도 잘 참아보렴. 결국은 모든 것이 끝나고 약속된 복을 받을 날이 올거야”는 식의 응답을 주셔야 힘을 얻을까 말까일 것 같은데,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삐딱하게 듣자면 “필요한 건 다 충분히 주고 있는데 왜 징징대냐”는 의미로도 들릴 수 있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이어지는 말도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의 실제적 고통에 대한 위로의 말이 전혀 없습니다. 네가 고통을 겪어서 내 능력이 온전해진다는 말씀은 정말 너무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반응은 또 놀랍습니다. 그래서 “크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라도 마음 속에 있다면 보일 수 없는 반응입니다. 결국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였기에 보일 수 있는 반응입니다. 그랬기에 어쩌면 차갑게 들릴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가장 원하는 그것을 자신의 약함이 가능하게 한다면, 그 약함은 그저 감내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강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약함 중에도 나에게 생길 어떤 좋은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낼 수 있는 환경과 상황, 그것이 허락된 것이 은혜임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