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양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참 목자의 마음

최종혁 · 2024.07.15 · 고린도후서 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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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1절)는 바울의 말에서 그의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그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답답함입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에게 속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것처럼 사탄의 일꾼들이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여 그들을 속이며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그들은 잘 용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러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답답함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그들에게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 바울에게는 어이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것이 자기 자랑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고 말하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통해서 어떤 사욕도 취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성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영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여 위험에 빠지는 것을 염려했고 그렇게 하지 않도록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성도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특히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조심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그렇기 하기 위해서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고린도 성도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을 어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떳떳하게 “하나님이 아시느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옳은 일을 신실하게 해왔습니다.

바울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자기가 희생했던 것이 억울해서가 아닙니다. 성도들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에 속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해서 거짓 복음을 진리인양 받아들이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치 자기 자랑처럼 들릴 수 있는 얘기도 하고, 그들이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책망과 같은 얘기도 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 말한 것처럼 계속해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 목자의 마음입니다. 거짓 목자는 양들을 이용할 생각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양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만 합니다. 양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참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들이 내 말을 들을 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반응할 때 기뻐합니다(요삼 1:4). 그것을 위해 내가 낮아지고 내가 손해를 보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목자가 세워지고 또한 끊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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