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엡 5:22-33). 우리는 결혼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가서는 일차적으로 결혼 안에서 부부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고 교회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랑의 중요한 특징 세 가지가 드러납니다.
첫째는 배타성입니다(6절,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성경은 질투를 사랑의 대체어로 사용할만큼 사랑의 배타적인 속성을 강조합니다. 어떤 관계는 여러 사람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지만, 부부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두 사람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이 관계에 개입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깨는 것이 유일한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배타적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셨고(엡 5:25),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십니다(엡 5:26-2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대상에 대해서는 이런 배타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이렇게 배타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약 4:4).
둘째는 지속성 혹은 영속성입니다(7절,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결혼 서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조건 없이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결혼 후 상황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사랑의 조건으로 만들지 않고 계속해서 사랑하겠다는 것이 결혼 서약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죽음 같이” 강하다고도 하는 것입니다(6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교회를 위해 실제로 자기 목숨을 내주실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1-39). 따라서,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조건 없이 계속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셋째는 자발성입니다(7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돈으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사랑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돈이나 힘으로 겉으로 보기에 사랑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수 있게는 할 수 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발적이었기에 그 한계를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빌 2:6-8). 교회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요 10:17). 겨우 해야할만큼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은 풍성하게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롬 5:5; 엡 3:17-19).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풍성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사랑이 배타적으로, 지속적으로, 또한 자발적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