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인간 입장에서 세상을 보려는 우리들에게 있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진리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인정하면 마치 참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 자유는?”하는 생각이 바로 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죄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한하신 자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나님의 주권이 아닌 나의 자유를 선택한 것으로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죄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정욕대로, 그 욕심대로, 그 상실한 마음대로 사는 것이 곧 죄의 본질입니다(롬 1:24, 26, 28).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셨을 때, 우리 안에는 죄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죄의 본질을 나의 정체성으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그게 나라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전적으로 나의 선택으로 두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그래도 믿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면 절대로 믿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지도 못한 천국을 위해 지금의 현실을 포기하며 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긍휼이고 사랑입니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낭떠러지를 향해 힘차게 자전거 패달을 밟고 있는 아이를 완력으로 멈춰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지, 왜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낭떠러지 앞에 가서는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랬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강제로라도 자기를 멈춰 세워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아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는 구원 받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무슨 노력을 열심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나의 자유를 꺾으시고 나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 스스로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이 삶을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셨는지, 그 이유입니다.
로마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의 의미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구원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