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얼마나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바울은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합니다(25-26절).
롬 9:25–26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결혼 서약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2장에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 2:19–20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호세아를 통해 실제로 이 결혼이 어떤 모습인지도 보여주셨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사랑할만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호세아를 떠나서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받고 그를 따랐습니다. 결혼 서약을 깬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그녀를 사서(구속) 사랑하며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과 같았습니다. 절대로 아름답고 순결한 신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상을 따르며 우상을 자신들의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결혼 서약을 깨는 간음(음행)을 행한 것입니다. 영적인 간음입니다.
배우자가 간음을 행한 경우 성경은 결혼 서약이 깨진 것으로 보고 이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 서약을 지키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결혼 서약을 깨는 선택을 했지만 하나님은 지키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호세아의 이 말씀은 본래 유대인들에게 해당되었던 말씀이지만, 여기서 바울은 같은 말씀이 이방인에게도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그 대상이 누구이든 사랑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사랑할만한, 사랑스러운 대상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 받아도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호세아를 떠났던 고멜처럼 그 삶이 망가져도 아무런 핑계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에 감사하지 못하고 반문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자기파멸적인지를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리고 호세아의 아내처럼 멸망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선택하여 멸망에서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죄의 본성이 있음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이 좋은 것이라고 말해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서는 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앞에, 절대적 사랑 앞에서 잠잠하기 원합니다. 겸손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그렇게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크신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