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5:6–11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구원 받은 날짜를 반드시 알아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경우는 날짜 뿐 아니라 시간에 분, 초까지 알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성장한 경우 오히려 그런 날짜를 찾으려다가 거짓된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떤 날짜를 기억하는 것보다 지금 현재 나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어느 때에 구원 받았는지를 아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6, 8, 10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었습니다(8절). 하나님은 우리가 그래도 뭔가를 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좀 나아지고, 최소한 우리가 나아질 가능성이라도 보였을 때에야 우리를 구원하려는 계획을 실행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 전에 이미 수립되었고, 때가 되었을 때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죄인이고,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랑의 확증인 것입니다. 무엇도 전제되어 있지 않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희생적 사랑의 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날짜는 모르더라도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을 때에 구원 받았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랑의 참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닌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는 오직 ‘사랑’입니다.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사랑입니다(7절). 이 사랑으로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습니다(9절). 이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10-11절). 이 모든 것에 감사하려면 내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인인 나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고, 원수인 나를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