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그 진짜 의미를 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분명하게 생각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은 하지만, 진짜 주권적으로 하셨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살짝 거리를 둡니다. 주로 우리 삶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에 대해서 ‘좋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합니다. 나쁜 일과 좋으신 하나님을 조금 떼어 놓음으로 나름 하나님을 보호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생각의 방향은 아닙니다. 나쁜 일, 즉 고난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멀리 두면 고난과 하나님을 오해하기 더 쉽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나에게 없어야 좋은 것인데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방관하고 계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혹은 악한 세력과 하나님을 비슷한 위치에서 싸우고 있는 라이벌처럼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을 조금씩 양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에 어떤 흠집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너무 쉽게 미래형으로 읽으려고 하지만 사실 현재형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고난 당하고 있는 ‘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18절 참고).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36절).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35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도 알지 못하고(26절), 피조물과 함께 탄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23절).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고 계신 일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고 계십니다(32절). 지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34절). 지금 하나님은 우리로 넉넉히 이기게 하고 계십니다(37절).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35, 39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고난 당하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거나 멀리하고 계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잘 이겨내서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잘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 나를 이기게 하고 계십니다. 지금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있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고난은 필요악이 아니라 단순히 필요입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을 잘 수습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28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18절). 우리는 그 영광으로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더 알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함을 알게 됩니다.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삶의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은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