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잡히셨습니다. 사실 ‘잡히셨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도망하거나 피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앉아 가르치셨는데 그 때는 잡히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제는 때가 되었고 예수님은 잡히셨습니다. 사람들이 계획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입니다. 무궁하신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 계획된대로 모든 것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했고, 대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도 그들의 역할을 했습니다. 군병들도 자기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셔서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멸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계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이 곧 예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그 무엇보다 기뻐하셨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셨던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다만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역설을 마주하고 계셨을 뿐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기 때문에 마주하셨던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의 자리에 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향하시던 예수님은 점점 혼자가 되셨고, 최후에는 사랑하는 아버지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을 수 밖에 없는 철저한 외로움을 견디셔야만 했습니다.
유다를 비롯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지만, 사실 죄를 범할 때마다 우리도 그 예수님을 다시 배반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우리가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을 따르고 다른 것을 사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예수님을 배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그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도 같은 기도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는 태도는 제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제자의 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여 넘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참된 주님의 제자입니다.
나를 구원하기위해 정말로 원하지 않았던 내 죄의 자리에 서셨던 주님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그 주님을 배반하지 않기 원합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오늘 하루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