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죄를 지어서 사형을 당하고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미워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장로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것이 그야말로 승리의 축제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마음껏 조롱했습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는 그 사실이 그동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부정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로마인의 손에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십자가에서 죽게 내버려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약속된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습니다. 그들이 조롱했던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지금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계셨습니다. 단지 로마 세력에서 구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질병으로부터, 혹은 가난으로부터, 삶의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의로운 자로서 죄인을 대신하시어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모든 죄의 문제가 예수님 안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인도하기위해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누려왔던 아버지 하나님과의 친밀함조차 포기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있어 십자가의 가장 큰 고통,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싶어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치셨던 것입니다(46절). 그 누구보다 하나님보다 친밀하셨던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든 진노를 쏟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료되었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찢었다면 아래서 위로 찢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다면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을 것이 없음을 보여주신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제 우린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양한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셨고 그로인해 죄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죄인들 중에 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달려야했던 십자가였고, 내가 받아야했던 진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로 나를 하나님께로 이끄셨으니, 다시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죄를 멀리하길 원합니다. 십자가로 더 가까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