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사랑하는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

최종혁 · 2024.03.26 · 마태복음 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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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미디 프로 중에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코너가 있습니다. 1분 뒤에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평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대로 한다는 소재로 웃음을 주는 코너입니다.

‘종말’에 대해서 얘기할 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이런 것인 것 같습니다. 종말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의 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극단적인 태도가 나옵니다. 하나는 종말로 모든 것이 끝나니 지금 하고 싶은 것 다하자는 방탕입니다. 도덕적인 삶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살고 싶은대로 살면 됩니다. 살기 싫으면 살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끝날건데 일찍 끝내도 상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와 같은 말은 삶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종말이 정말로 모든 것의 끝이라면 이런 삶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말 이후의 삶을 믿기는 하는데 어쨌든 종말을 끝으로만 생각할 경우에 생기는 현생의 포기입니다. 이 경우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결국 앞에서 말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마치 내일 철거될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삽니다. 오늘과 내일의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오늘과는 상관 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이 두 극단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근본에는 같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말은 끝’이라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도 종말을 ‘끝’의 관점에서만 보면 같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은 ‘끝’보다는 ‘심판’, ‘결산’, ‘추수’의 개념입니다. 혹은 면접이나 입학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말을 끝으로 보면 현재는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심판이나 결산, 추수, 시험의 개념으로 보면 현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종말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종말로 시작되는 새롭고 참된 삶으로 가는 과정이 지금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종말론은 바른 삶의 기초가 됩니다. 바른 소망을 가지고 지금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아내와 남편을 사랑할 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할 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 선하게 대할 변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상황이 힘들어도, 내 몸이 건강하지 못해도,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이 영원한 가치를 갖기에 우리는 참되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우리의 기도가 단순히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정말로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으로서 사랑하는 주인을 기다리는 그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이기를 원합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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