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그야말로 마지막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이 아니라 유월절의 마지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기념했던 유월절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었고, 이제 예수님께서 그 구원을 이루실 것이기에 유월절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유월절 대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통해 예수님을 기념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짐승의 피는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히 10:4, 11). 아무리 흠 없고 점 없는 순결한 짐승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구원합니다(벧전 1:18-19). 우리가 기념할 것은 바로 그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희생의 죽음입니다.
익숙해 져서 좋은 것들이 있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말아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은혜에는 익숙해 지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가 익숙해지면 더 이상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게 되고 더 이상 감사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습니다. 이 은혜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더 이상 예배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새 노래”로 찬송할 것을 명령합니다. 은혜에 익숙해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고백이어도 새로운 구원의 경험으로 인해 새 노래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의 노래는 하늘에서도 새 노래입니다.
계 5:9–10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예수님을 기억하는 만찬 예식을 매주 하는 것은 너무 자주하는게 아닙니다. 사실 할수만 있다면 매일이라도 해야할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익숙해져서 새로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주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매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감사가 넘쳐야 하고, 그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드려지는 우리의 찬양은 언제나 새 노래입니다.
내 입에 새 노래가 넘쳐나고, 우리의 예배가 새 노래로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