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을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만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은 곧 시련과 핍박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시련과 핍박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선택했고, 그것이 단지 예수님을 아는 사람과의 분명한 차이로서 드러났습니다.
이런 사실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 때도 동일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처음부터 언급하고 있지만,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단지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고 그 명령을 따르지 않든지, 아니면 그래도 그동안 보여준 것이 있으니 한번 그렇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명령을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맹목적’이라고 비난을 받더라도, 믿는 사람은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들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산으로 가서 아들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를 막아서셨지만,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삭을 드린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이 입증되었습니다(약 2:21).
사실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시험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믿음은 순종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순종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믿은 사람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혼동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알라고 합니다.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합니다(고후 13:5). 자발적인 사랑의 순종이 바로 믿음의 증거입니다.
오늘의 한 구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