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의 기준을 정해두고, 그 이상의 무엇을 하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들 수 있는 무게의 한계가 있었고, 걸을 수 있는 거리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픈 사람의 상태 유지를 위한 의료 행위는 괜찮았지만, 상태를 나아지게 하는 것은 ‘일’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준도 세웠습니다. 율법에 없는 기준일 뿐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생명 존중의 원리에 반하는 기준이었지만, 그들은 이것이 율법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특별히 안식일을 두고 유대인들과 자주 논쟁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예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날에 해도 되는 일들을 굳이 안식일에 하셔서 그런 논쟁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단지 논쟁을 하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관점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단순한 종교로 만든 그들의 죄를 드러내려고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동안이나 병으로 고생하던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병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걷는데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6-7절).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8-9절). 문제는(?)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그 사람에게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며 그를 정죄했습니다(10절). 그리고 그의 병을 낫게 하고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사람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는 예수님을 박해했습니다(16절).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답하셨습니다(17절). 안식일이라도 사람을 낫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냥 주어진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 이유가 있고, 그 명령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명령에 대한 순종은 순종이 아닌 것이 됩니다. 가진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고전 13:3). 하나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구제로 나타나야할 것을 명하신 것이지, 단지 구제라는 행위만 명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모든 수고를 하고서도 순종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루가 이러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