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귀환한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이라면, 에스더는 귀환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야기는 귀환하지 않고 남아있던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사실 유대인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아하수에로의 왕국, 즉 바사(페르시아)의 모든 유대인을 멸절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진멸에 대한 조서가 내려진 것을 알고 모르드개는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 통곡을 하며 대궐 문 앞까지 갔습니다(1-2절). 상황을 모르던 에스더가 사람을 보내서 물었을 때, 모르드개는 상황을 알리면서 당시 왕후였던 에스더에게 왕에게 나아가서 유대인을 위하여 말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8절). 하지만 에스더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왕의 부름 없이 왕에게 나가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11절).
이런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책망과 격려의 말을 합니다(13-14절). 먼저 그의 책망은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했습니다. 에스더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분임을 그는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격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기초했습니다. 그는 에스더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 때에 ‘우연찮게’ 왕후의 자리에 있는 것이 정말 우연찮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든 구원하시지만, 지금 여러 상황을 볼 때 하나님은 너를 통해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것 같다는 것이 모르드개의 의도였습니다.
모르드개의 이 말에 에스더는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도 그렇게 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믿음의 결단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좋아하지만, 우리에게 더 가까운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기적은 누가 봐도 “이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섭리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론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모르드개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섭리에 대해서는 “누가 알겠느냐”라고 하면서 견해로서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도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단하지만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사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실제 믿음의 삶에 가깝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것이라는 100%의 확신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자체에 대한 100%의 확신을 가지고, 불확실함 속에서도 믿음의 결단을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원하고 바라는 바는 있지만, 정말로 어떻게 되더라도 그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이 삶의 길을 따라 나도 담대히 걸어가길 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