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그럴듯한 말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최종혁 · 2026.04.01 · 열왕기하 18:19-35

본문 글자 크기 100%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함락시키고 남유다도 점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했습니다. 이에 앗수르 왕은 랍사게를 보내 자신의 말을 전합니다. 그의 첫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19절) 흥미로운 것은 당시 유다 왕이었던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하나님을 가장 의지했던 왕”이었다는 점입니다(왕하 18:5). 바로 이 사건이 히스기야가 그런 평가를 받게 된 주요 배경이 됩니다.

랍사게는 그야말로 설득의 달인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말에는 논리적인 오류가 없습니다. 먼저 그는 유다 자체에는 앗수르를 이길만한 어떤 힘과 전략도 없다는 말을 합니다(20절). 인정하기 싫겠지만, 객관적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그는 애굽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21절). 이는 북이스라엘이 취했던 전략인데,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랍사게는 계속해서 그럼 너희 신 여호와를 의지하겠느냐고 묻습니다(22절). 이것이 히스기야가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랍사게는 이 말에 어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산당과 제단은 제거했냐는 것입니다. 신을 기쁘게 하려면 더 다양한 장소에서 많이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 왕을 신이 돕겠느냐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자신들이 이렇게 올라온 것이 여호와의 뜻이라고도 말합니다(25절). 유다 사람들로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랍사게는 회유를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히스기야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바로 항복하면, 앗수르 왕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평안히 거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명히 경고합니다. 그 어떤 민족의 신도 앗수르의 군대를 막아낸 적이 없으니, 여호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정연한 말 앞에서,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 논리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따를 것인지입니다. 이들은 이성과 신앙 중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랍사게의 말이 논리적 오류가 없으려면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여호와가 다른 민족들의 신과 같다는 전제입니다. 랍사게는 지금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여호와는 다른 민족의 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전제를 두고 그는 위협도 하고 회유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가 다른 신과 같지 않다면, 그의 모든 논리는 무너집니다. 따라서 이 결정은 논리와 믿음 사이의 결정이 아니라, 믿음과 믿음 사이의 결정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없다는 믿음과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 사이의 결정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선택했습니다(왕하 19:15-19).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히스기야에게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왕하 19:35-37).

아무리 그럴 듯하고 합리적으로 들리는 말이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시작된 말의 결론은 사실일 수 없습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 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여(고후 10:5),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왕하 18:30)

이어서 살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