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받기

최종혁 · 2026.03.31 · 열왕기하 17: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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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왕하 17:6).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멸망의 원인에 대한 설명입니다. 설명은 길지만 사실 원인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겼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규례를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의 민족을 쫓아내고 가나안 민족과 같이 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가나안 민족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말씀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목을 곧게 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로만 경고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적인 재난으로 이들이 계속해서 불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맞이하게 될 심판도 보여주셨지만, 결국 이들은 멸망의 길을 택했고 하나님은 마침내 이들을 다시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시는 것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역사를 보니, 이들이 유난히 더 어리석게 느껴지고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역사를 살았다면 어쩌면 비슷한 선택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분명 심판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심판의 말씀을 듣기 전인 어제나, 듣고 난 지금이나, 그저 평범한 일상입니다. 내일이라고 해서 갑자기 뭔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면, 심판의 메시지는 잊혀집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지금 나의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은 보지 못하고, 그저 ‘심판 받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안도감으로 삽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안도감으로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우리에게 베드로의 이 말은 경종이 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방종과 교만의 빌미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지금 회개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해야 합니다(벧후 3:11-12).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회개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오늘의 한 구절: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왕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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