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는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특히 욥의 친구들의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들의 말이 맞으면 그에 반박하는 욥의 말이 틀린 것이 되고, 욥이 맞으면 이들의 말이 틀린 것이 될텐데,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틀리기도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의깊게 보면, 이들 모두의 하나님에 대한 관점은 옳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사회에 뿌리깊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이들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욥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네가 고난을 받으니 너는 분명 죄를 지었어”라는 말을 반복하고, 욥은 자신이 그럴만한 죄를 지은 것이 없으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친구 중 하나인 소발의 말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셔서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심을 말합니다(7-9절). 바로 앞인 6절을 보면 소발은 특히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도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는 여러 실제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 소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연결지어 말합니다. 세상을 보면 하나님은 악한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11절). 실제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면 왜 세상에 악이 있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악을 바로 바로 심판하시면 세상에서 악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사라질 것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 뿐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시고 공의의 심판을 하실 때가 옵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악한 일을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께서 그 모든 악을 심판하실 때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10절).
악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은 그래도 괜찮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11절).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합니다.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결산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19:30), 이는 ‘다 지불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결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래서 또 다시 죄에 대해서 결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용서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욥 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