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지옥의 비참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 말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이 땅에 있을 때에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파티를 즐기며 그야말로 즐겁게 살았습니다(19절).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때가 되어 죽음을 맞이 했고, 장사되었습니다. 비유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상황이었다면 아마 화려한 장례식이 치뤄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가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의 바람과 달리 부자가 눈을 뜬 곳은 음부였고 그는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23절). 특히 그는 극심한 갈증을 호소했습니다(24절). 땅에 살아 있었을 때는 먹을 것이 많아 버려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던 그가 이제는 물 한 방울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있는 음부는 바로 그런 괴로움을 위해 준비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25절).
하지만 이것이 지옥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 고통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고통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26절). 정해진 시간이 있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을 알지 못하는 고통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옥의 고통은 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견뎌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 죽음도 선택지에 없습니다. 살아서 영원히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자신은 이미 늦었으니 자기 형제들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도록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28절). 하지만 부자 자신도 몰라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도 “모세와 선지자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런 고통의 장소가 있음을 들었습니다. 다만 그가 무시했던 것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 충분히 경고하셨습니다. 이 경고를 받아들인 자들을 통해서도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결국 예비된 심판을 받는 운명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비유 속의 부자는 부자여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어서, 호화롭게 즐겨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간 것입니다. 누구든 이 부자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당시의 사람들을 경고하셨고 또 지금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도 경고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이적과 증거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들을 귀입니다. 듣고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