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시험으로 욥은 재산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재산과 건강을 잃었을 때, 그의 인간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욥은 자신이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음을 토로합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같이 되었습니다. 그가 많은 것을 가졌을 때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아내도 그의 숨결을 싫어하고,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를 업신여기고 조롱합니다. 그를 위로하겠다고 온 친구들은 오히려 그를 더 괴롭게하는 원수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에 그의 편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욥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소망을 말합니다. 그에게 살아있는 대속자가 있음을 확신합니다(25절). 여기서 말하는 대속자는 룻기에서 봤었던 ‘고엘’(친족구속자)’로서 내 편에서 나를 구해주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욥은 심지어 지금은 하나님께서도 그를 박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22절),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영영 떨어져서 멸망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그의 대속자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자, 중보자, 대언자가 되어줄 것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이 대속자로 인해서 하나님도 (지금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자신을 원수같이 대하지 않을 것도 확신합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욥은 이런 일들이 그의 죽음 후에 이루어질 것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26절). 그는 지금의 고통스러운 육체를 벗은 후 다른 육체를 입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즉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될 날을 그는 소망했습니다.
욥은 그야말로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소망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속자가 살아있음을 믿었고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욥의 이 땅에서의 절망은 그로 하여금 하늘의 궁극적인 소망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속자’에 대해서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욥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대속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우리도 그분과 같이 부활하여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소망이고, 하나님은 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로 이 소망을 보게 하십니다. 땅만보고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하늘을 보면 이 땅에서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대속자가 살아계시고, 우리는 언젠가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를 충성스럽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