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주님께 짐을 내려놓고 누리는 안식

최종혁 · 2026.08.13 · 마태복음 11: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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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트러블 메이커’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하신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상에 “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고, 누군가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단정했습니다. 누군가는 예수님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했지만, 누군가는 예수님을 심판받을 죄인으로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런 다른 반응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이적을 보여주셨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이적을 행하신 곳이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21, 23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두로와 시돈, 심지어 소돔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22, 24절).

이런 회개하지 않음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교만’입니다(23절).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이 듣고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25절).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26-27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수님께로 나아 가는 것입니다(28절). 내 생각, 내 방법, 내 힘, 내 의지를 내려놓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나아가서 배우는 것입니다(29절). 거기에 참된 쉼이 있습니다. 거기에 참된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것은 말 그대로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왜? 굳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라서 일의 효율성이나 결과에 대한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6일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려면 최소한 매끈한 돌은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에게 승리하려면 그래도 300명의 군사는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필요’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애초에 그런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겸손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음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려야할 참된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심을 믿고 나의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인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는 우리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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