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16절).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핍박이 있을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이 미워하기 때문에 진리의 메신저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26, 28, 31절).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진리는 결국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6-27절).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거짓은 거짓으로, 진리는 진리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은 그것을 거짓이라고 하고 악이라고 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을 핍박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결국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8절). 당장은 눈앞에서 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두렵겠지만, 그보다 하나님은 더욱 두려운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32-33절), 당장의 핍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지옥의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돌보시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9-31절).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우리는 참새와는 비할 수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핍박을 받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돌보시는 손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갑자기 누가 뒤에서 소리를 치면 깜짝 놀라는 것처럼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따라 행할지 아닐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유리로 된 바닥을 보면 깨질 것 같아 두렵고 그래서 그 위에 올라서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유리가 튼튼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사실을 알면, 우리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두려우니 올라서지 않겠다는 결정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튼튼한 것이 증명되었으니 올라서는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두려운 마음을 꾹 참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이겨내 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에 근거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만한 상황은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 두려워해야 할 상황은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주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