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하니까 하는 것이거나 해야하니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에게는 많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의무 혹은 습관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헌금에 대해서 말할 때는 항상 ‘자원함’이 강조됩니다. 사실 이것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제든 하나님은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습관처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끼어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참된 제물이고 헌금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 교회가 헌금을 했던 모습을 묘사한 바울의 표현을 보면 ‘자원’이나 ‘기쁨’을 넘어서 ‘간절함’이 그 안에 느껴집니다.
고후 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마게도냐 교회는 바울에게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렇게 하기위해 그들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을 했습니다(3절). 단지 돈만 모아서 보냈던 것이 아니라 먼저는 그들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5절). 헌신하는 일이 귀찮아서 그냥 돈으로 대신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싶었고 성도를 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간절함이 헌금의 모습으로도 드러났었던 것 뿐입니다.
어떤 면에서 헌금과 간절함은 함께 언급되는 것이 좀 낯섭니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의무나 습관이 헌금과 더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좀 더 어울리면 좋은 단어는 자원과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넘어서 ‘간절함’도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헌금 하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마게도냐 교회는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헌금을 하고 싶은 간절함,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의 근본에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에 대한 바른 지식입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은혜가 우리에게 섬김과 헌신에 대한 간절함을 줍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의 열매가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헌금은 그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의 문제이고 참된 구원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헌금에 있어 이런 간절한 마음이 나에게 있나 돌아보게 됩니다. 간절한 마음보다는 헌금을 한다는데 의를 두기도 하고, 때로는 헌금을 했으니 뭔가 최소한의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간절함이 고린도 교회에게 도전이 되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도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