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회복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최종혁 · 2024.07.08 · 고린도후서 7: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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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죄든 그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그 사람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이미 그 이름에도 ‘거룩’을 담고 있고, 구원 받은 사람은 누구나 그 안에 성령님께서 계시는데(롬 8:9), 거룩과 반대되는 실체인 죄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연약함으로 인해서 죄를 범하지만 그것이 ‘그래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죄로 인해 ‘근심’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근심이 회개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근심하여 죄책감에 빠지게 합니다. 근심하여 좌절하게 합니다. ‘나같은 게 그렇지 뭐’하는 생각을 집어 넣어 돌이키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합니다.

죄는 그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를 바라볼 때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안에서의 참된 만족보다 순간 나의 죄악된 만족과 기쁨을 추구할 때 우리는 죄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근심’은 이제 낮아진 마음으로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게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여전히 나만 바라보면 좌절할 수 밖에 없고 죄책감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울은 그 근심을 ‘사망을 이루는 근심’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똑같이 슬퍼하고 마음으로 통회하는 것이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바라보며 낮아지고 슬퍼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참된 소망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입니다. 참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근심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아무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근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근심이 더 큰 죄에 나를 머물러 있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근심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참된 소망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죄로 인해 애통하는 것 자체가 회개는 아닙니다.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모습은 어쩌면 애통과 죄책감의 극단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죽음은 아무런 차이도 만들지 못합니다.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애통과 죄책감 속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참된 근심이고 우리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게 합니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나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연약함 가운데서도 회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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