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우리는 잘못된 이분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화와 관련된 잘못된 이분법입니다. 성화에 있어 하나님의 능력과 나의 노력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하고 오직 하나님이 일하게 하셔야한다고 말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구원은 하나님이 해주시지만 성화는 온전히 내가 노력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분리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리한 잘못된 이분법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잘못된 이분법의 함정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하든 뭐를 하든 나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면 됐지, 뭐를 그렇게 다른 사람 신경쓰냐. 그건 위선이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양심은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만 신경쓰는 진짜 위선도 교회 안에는 존재합니다.
이는 잘못된 이분법에 빠진 두 극단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모아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이런 이분법, 특히 전자의 경우를 경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후 8:20–21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주 앞에서”만 괜찮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괜찮아야 했기에 바울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검증받아 신뢰할만한 사람들에게 이 헌금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만 이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을 선택했는데, 모두 이 일에 간절함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일하고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의 신뢰만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가 신뢰하고 또한 교회를 신뢰하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도 연보와 관련하여 바울을 비방하거나 할 수 없도록 조심했던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이 비방을 받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이 간절함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귀한 하나님의 일이 비방을 받고 어쩌면 잘못될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바울은 더욱 조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하는 것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로 생각해서 나쁘게 보기도 하지만, 이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지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이 죄인일 뿐 아니라 나도 죄인입니다. 따라서 이런 면에 있어서는 괜찮을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믿어주는 것보다 확실하게 할 것은 확실하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주는 방법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방해받지 않게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런 지혜를 나쁜 경험을 하고 나서야 배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치명적이지 않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때로는 정말 치명적이어서 다시는 그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부주의함으로 인한 문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빈다. 주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