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지만, 그들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기심에 예수님을 찾아 왔던 사람들도 있었고, 온전히 자기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왔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어떤 조건을 달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이었다면, 이런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삼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지를 오해하지 않도록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마음의 결단을 한 사람입니다.
당장에 자기 소유를 모두 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을 “주님의 소유”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내 소유는 이미 버린 것과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의 경우 예수님은 바로 이 소유권을 주장하셨었습니다. 재물이 그 청년에게 가장 큰 주인이었고, 그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가 되어야 함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원리는 나의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심지어 자기 목숨에까지 적용됩니다. “나의 ( )”이 전부 “주님의 ( )”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계산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원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 )”은 내 것으로 남겨두고, 다른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니 주께서 원하시는대로 사용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제자는 이런 결단을 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날마다 이 결단 속에서 갈등하고 싸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바로 위에서 말한 고백이 거짓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진심이고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지만, 육체의 연약함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15-25절이 바로 이런 제자의 탄식입니다. 원하지도 않고 미워하는 일을 하는 나를 나도 모르겠습니다(15절). 내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것 같고, 그 이름은 죄입니다(17, 20절). 나는 정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여전히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습니다(22-23절). 나는 정말 곤고한 사람입니다(24절)! 하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할 수 있습니다(25절). 내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완전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제자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여전히 삶에서는 나의 것을 주장하는 나를 위해, 예수님은 자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계산할 것은 이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자로서 조금이라도 더 합당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