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여자어’와 ‘남자어’에 대한 재밌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특정 상황에서 하는 말들의 (내재된) 바른 의미를 유추해보는 그런 내용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의도(마음)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를 뿐이지 남자든 여자든 비슷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많습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좀 민망하거나 창피해서 의도와 다르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애초에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따라서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혹은 어떤 이기적인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더 잘보이려고 하거나 상대방의 환심을 사거나 혹은 상대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헛점이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 진심을 알기가 때로는 정말 어렵습니다. ‘좋아’라고 말할 때, 정말 좋은 것인지, 그냥 상황이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하고 말하기 귀찮아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한테 미안해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판단을 해야 합니다. 진짜 속내를 모르겠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 예”하면서 “아니라 아니라”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17절) 그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나 감정을 다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죄악된 생각이나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스려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표현은 그의 정직함과 투명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그의 말을 다른 성도들이 믿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의도를 숨기고서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오해하게 만들거나 혹은 조종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도를 숨기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지키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저 사람은 겉으로는 항상 저렇게 말하는데 생각은 딴 데 있더라. 저 사람 말은 반만 들어야 해. 저 사람 지금은 저렇게 말하지만 나중엔 또 뭐라고 할지 몰라”와 같은 말들은 우리가 듣지 말아야할 말들입니다.
우리는 믿고 신뢰할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쩌면 좀 어리석거나 지혜롭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가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해서 괜한 어려움을 겪거나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니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믿을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전하는 복음도 믿을만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나의 평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진리를 위해, 또한 다른 성도들을 위해, 우리의 ‘예’는 ‘예’가 되고 ‘아니오’는 ‘아니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이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우리가 이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을 세상 가운데 나타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