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을 모함하던 자들은 꽤나 집요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에 일부러 자비량을 하면서 교회를 돌봤습니다. 돈이 필요해도 고린도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일반적인 원리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지역의 교회에서 일을 한다면 그 교회가 해당 일꾼을 돌보는 것이 성경적인 원리이기 때문입니다(고전 9장).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그 이유를 말했는데(고전 9:12), 아마도 그를 모함했던 거짓 교사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돈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모함했기 때문에 바울은 어떤 돈도 받지 않는 것으로 복음에 장애가 되는 것을 치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으는 것을 두고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교활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모함했습니다(고후 12:16). 자기가 직접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자기 사람들을 통해 돈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절대 그럴 이유가 없음을 말합니다.
재물이 바울이 사역을 하는 이유였다면 이미 바울은 재물을 많이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가 헌금을 모으기 위해 보냈던 디도를 비롯한 사람들도 우리가 이미 살펴봤던 것처럼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들도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을 통해 바울이 원했던 것은 자기 명예를 지키거나 자기를 모함하는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했습니다(19절). 바울은 그들을 사랑했고 다시는 전과 같이 그들의 죄를 대면하며 가슴 아플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20-21절). 물론, 그들의 죄를 발견한다면 그는 죄를 대면했을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여 그들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 바울의 진실된 동기와 목적이었습니다.
교회의 일꾼도 여전히 죄와 싸우는 사람인지라,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게 재물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기를 얻는 것, 인정을 받는 것, 권위를 누리는 것 등 여러 자기 욕심을 교회를 통해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욕심을 따르면 삯꾼이 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주신 교회를 주님처럼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단장되고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