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분명 옛 계명입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신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모든 구약 말씀의 요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최우선으로 고려해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이 계명은 새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는 1절이 말합니다.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절)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시간에 있어서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끝이 다가오면 우리는 잘 해왔던 일에도 소홀해지기 쉬운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가장 중요한 사명을 이루셔야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다른 사람을 방해로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생각하시고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들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자기를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어머니를 돌보셨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또한 정도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게 하실 수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스승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누구도 보이지 못한 사랑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는데, 실제로 자신은 원수인 자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사람이 되셨고, 사람을 위해 죽기까지 자기를 희생하신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범위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는 이미 예수님을 배반하고 이제 곧 예수님을 대적들을 손에 넘겨줄 가룟 유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유다의 발도 씻기셨습니다. 공생애 중 예수님은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관계 없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는 사람에도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해 볼 수 있는 측면은 많이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 사랑은 ‘끝까지 한’ 사랑이었습니다. 빠짐이 없이 철저한 사랑이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며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을 “All or Nothing”으로 받아들이면, 이 명령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명령일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예수님만큼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따라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끝에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봐야할 끝을 보여주셔서 우리가 걸어갈 길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의 길 끝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길을 따라 오늘도 내일도 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