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판단하는 것은 참 쉽고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서 나는 그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남이 잘한 얘기가 아니라 남이 못한 얘기, 실패한 얘기, 어리석게 행한 얘기와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그 얘기를 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긴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이런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너도 똑같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고, 아무리 분별력이 좋아도, 결국 그에 따라 살지 못한다면 다를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 말씀은 참 두려운 말씀입니다. 물론 바울은 궁극적으로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을 하고자 이런 논리를 펴고 있지만, 결국 믿는 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약 3:1).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의 죄를 지적하면서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듯 말하기도 합니다. 나의 삶이 아닌 나의 말에 대해 남이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을 듣는 것으로 마치 내가 괜찮은 사람인 듯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인도를 받아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계속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여 영생 얻은 자로서 합당하게 사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에 감사드립니다. 그런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기 원합니다. 남을 판단하며 나를 판단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기 원합니다. 나를 판단하여 나의 죄악됨을 보고, 그 죄에서 회개하여 선을 행할 수 있기를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사실이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힘이 되어 오늘 악에서 떠나 선에 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