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자기의가 아닌 낮아진 마음으로

최종혁 · 2026.09.07 · 누가복음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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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가장 많이 질책하셨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준에서 지탄 받을만한 죄악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율법에 따라서 철저하게 구분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그들은 더 높은 기준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더 영적인 사람들, 더 의로운 사람들, 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사람을 멸시했습니다(9절). 그 기준은 그들이 생각하는 ‘율법의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자신의 행위를 비교하면서 스스로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그들의 ‘자기의’의 무가치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이 비유 속에는 성전의 바리새인과 세리가 등장합니다. 바리새인은 사람들과 같이 있지 않고 따로 서 있었습니다(11절).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음을 그렇게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감사 기도도 아니고, 사실상 하나님을 향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기도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세리와도 같지 않음에 감사했습니다(11절).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린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12절). 이것이 그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의’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모두에게 죄인 취급을 당하는 세리도 있었습니다. 그도 따로 서 있었지만(13절) 바리새인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을 수 없었기에 멀리 서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멀리 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기도가 그렇습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단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13절).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의가 전혀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 기도를 들었다면 “그래도 죄인인 것은 아나보네? 근데 너에게 어울리는 것은 긍휼이 아니라 심판이야. 하나님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고 돈을 택한 사람이 무슨 낯으로 불쌍히 여겨달래?”라고 말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14절).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하나님의 의에 더 합당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가 가득 찬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지 않으십니다.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 자비를 구하는 사람에게 그분의 의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자기의’는 무가치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세리의 마음이 늘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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