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두 탕자에게 베푸신 아버지의 은혜

최종혁 · 2026.09.03 · 누가복음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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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돌아온)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오늘 본문은 말씀이 전해진 상황(1-2절)을 고려하면 ‘두 탕자(아들)의 비유’ 혹은 ‘두 탕자를 둔 아버지의 비유’가 더 적합할 것입니다. 이 비유는 두 부류의 탕자와 그 둘 모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첫째 탕자는 우리가 잘 아는 탕자입니다. 이 탕자는 동생으로서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당연히 다시 돌아올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다시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18절), 자신이 아버지의 은혜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했습니다(19절). 그렇게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기쁘게 맞이했습니다(20-24절). 이 탕자는 전형적인 죄인에 대한 비유입니다(1절).

둘째 탕자는 집 안에 있었던 탕자입니다. 형이었던 이 탕자는 집을 떠난 적이 없고, 열심히 아버지의 일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지 않습니다(28절). 형의 말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29-30절입니다. 여기서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나도 동생처럼 아버지 유산을 받아서 원하는대로 방탕하게 살걸 그랬다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동생은 후회하고 회개한 그 삶,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선택하지 않을 그 삶을 형은 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은혜는 죄를 선택할 구실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떠나지 않았을 뿐, 탕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동생처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댓가를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29절). 아버지는 자신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았고, 동생에게는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에, 그는 분노했고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 탕자는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에 대한 비유입니다(2절).

중요한 것은 아버지는 두 탕자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점입니다(31-32절). 한쪽은 그 은혜 안에 즐거워했고, 한쪽은 그 은혜에 분노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교회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형의 마음이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마음은 사실 포도원에 먼저 와서 종일 일했던 품꾼의 마음이기도 합니다(마 20:10-12). 그래도 나는 이만큼의 수고를 했는데, ‘은혜’라는 이름으로 그 수고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은혜 앞에서 우리는 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내가 은혜 받기에 합당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집 안의 탕자든 집 밖의 탕자든, 나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수고’라는 이름의 교만을 버려야, 진짜 은혜를 만나고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의가 아닌 참된 회개임을 늘 기억하기 원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눅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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