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습니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위험천만했습니다. 살아 남은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예수님은 바울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고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었습니다(행 23:11). 그러니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이 아무리 위험하다 할지라도 바울이 로마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바다에서 경험한 일들은 도대체 이 약속이 어떻게 현실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며 확신을 주었습니다(24절). 이는 바울 뿐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배는 난파되었지만 바울을 비롯한 일행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전하게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결과에 대한 스포일러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미래’라는 것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하나님께서 확실하다고 말해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앞선 말씀을 통해서는 마치 결과를 알고 재방송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정확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재방송하는 스포츠 경기는 과거의 일을 현재에 경험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은 미래의 일을 현재에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 대단한 누군가가 약속을 한다고 해도 그 약속이 100%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고 그것에 기초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약속을 받아들였다가 약속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경험을 통해 약속은 약속일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약속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쌓아온 세상살이의 상식을 하나님께도 그대로 대입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쁜 분은 아니시니 최선은 다하겠지만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지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정말 믿음으로 살지를 못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르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상식을 하나님께 대입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상황이 달라지면 미래가 달라지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지만, 아무리 상황이 달라져도 약속하신 하나님은 달라지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더 큰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바다에서 배가 표류하여 모든 사람이 어찌할지 모를 때 바울은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바울만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똑같이 염려하고 걱정하고 좌절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자세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100%의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