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많은 진리들이 균형적인 관점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균형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간’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양쪽을 반반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조화될 것 같지 않은 양쪽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중간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입니다. 균형의 문제가 있을 때, 어디 쯤이 중간인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어떤 관점을 제시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 원하고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던 모습은 (그런데 실패했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육적인 방법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야 가는거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드러내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 길이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을 보면 그는 항상 ‘계획’을 가지고 ‘움직였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의 이런 모습을 더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고 싶었지만 성령께서 그를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가만히’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가만히 있지 않았고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게도냐로 부르심을 받고 그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차피 마게도냐로 가야하는건데, 분명한 부르심이 있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이리저리 다니느라 에너지나 자원만 낭비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있어 성경적인 균형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주어지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뭐든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뜻을 다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결국 이렇게 될 건데, 왜 이런 길로 인도하셨나요?’라는 볼멘소리를 할 법한 상황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의 과정과 결과를 처음부터 다 보여주시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육적인 선택은 자기 욕심을 따라 계획하고 행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육적인 선택이지,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자체가 육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고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그 했던 모든 것을 ‘육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드러내신 뜻(성경)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성경적인 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항상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꾸 내가 편한 쪽으로 치우치려고 합니다. 자꾸 내 생각대로 뭐를 하려는 사람이 있고, 자꾸 기도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편한게 아니라 내가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행하느냐입니다. 그럴 때 내 삶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는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선 것으로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감사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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