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믿음으로 인해 칭찬을 받았던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믿음 없음으로 인해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도 보았지만, 예수님을 믿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애초에 제자들에게 믿음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때 제자들은 믿음 없는 자들처럼 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예수님께 받았습니다. 실제로 그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없었습니다. 후에 그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기도”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셨습니다(28-29절).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공이 가져온 교만으로 인해 이들은 믿음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믿음 없는 자처럼 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또 다른 믿음 없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선하신 성품은 믿고 있었지만 그 능력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단서를 달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22절). 예수님은 단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며 그를 책망하며 가르치셨고(23절), 이에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어찌보면 모순처럼 들리기도 하는 말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에 대한 가장 정직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믿기를 원했고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실 우리 믿음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이 있다는 교만에 빠져서 오히려 더 믿으려고 하지 않고 믿음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그렇게 믿음의 능력을 잃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사람의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더 깊은 믿음의 바다로 나아가 더 큰 믿음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상황이 좋다고 자만하지 않고, 상황이 나쁘다고 의심하지 않으며, 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막 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