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하루

최종혁 · 2024.11.08 · 히브리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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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기 힘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하면 핑계이지만, 분명 그렇게되기 쉬운 세상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방해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은 거의 혁명적으로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아갔고, 그결과로 ‘시간’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빼앗는 것입니다.

단순히 스마트폰 알림 때문에 방해를 받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는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즐기던 것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서 중요한 일을 하는 중간에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래서 실제로도 하게 됩니다. 결국 1시간에 할 일을 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 합니다. 침대에 눕는 시간과 실제로 잠에 드는 시간이 심각하게 차이가 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바쁜 삶을 삽니다. 어쨌든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해야할 일’에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 그것도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선 순위의 저 아래로 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영역입니다. 굳이 진리와 힘들게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사탄은 찾아낸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거짓으로 진리를 무너뜨리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을 그저 진리에 무관심하게 만드는데 사탄은 성공했고 그것은 ’바쁨’을 통해서 입니다. 실제로 할 일이 있는 것 이상으로 위에 언급한 방식을 통해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정말로 해야할 일이 아닌데 해야할 일로 생각하게 만들어서 (예를 들면, 그래도 남들 다 보는 드라마나 영화는 봐야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들) 더 바쁜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교회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조차도 대단한 희생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 신앙 서적을 읽는 것, 따로 설교를 챙겨 듣는 것 등은 ‘사치’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건 정말 신앙 좋은 일부의 사람만 하는 일처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주일에 한 번 만찬예배 시간에만 겨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금 묘사한 모습이 나에게도 보이는 모습이라면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분이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 앞에 매혹적으로 보이는 다른 무엇으로 계속해서 예수님을 대체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6절).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집”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 그렇게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6절).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따라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 멀어져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게 돕는 것들을 가까이에 두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의지하는 가운데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 그분과 더 깊은 교제 가운데 거하며 그분을 닮아가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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