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제 다시 멜기세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시라고 말할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인데 어떻게 제사장이 될 수 있느냐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을 따른 제사장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여전한 의문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치 다른 이방 제사장인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으로 더욱 위대한 제사장이시라고 말합니다.
멜기세덱은 왕이면서 제사장이었던 것이 예수님과 동일합니다. 직분에 있어 제사장과 왕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직분을 동시에 가졌던 사람이 없지만 멜기세덱은 예외였고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좋은 모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멜기세덱은 또 다른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는 어떤 레위인 제사장들과는 다르게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3절). 레위인 제사장은 그 속한 지파가 중요하기 때문에 족보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멜기세덱은 그런 어떤 기록도 없이 창세기 14장에서 갑자기 등장했다가 사라집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런 면에서 멜기세덱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멜기세덱과 관련하여 강조되는 것은 그가 레위보다 더 높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레위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고,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이신 예수님에게도 적용되어 예수님은 그 어떤 제사장보다 나은 제사장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레위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보다 못한 제사장이 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은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레위 제사장은 크게 두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세워져야 했습니다. 둘째는 그들 자신의 연약함(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도 계속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들이 계속해서 대체되고 또 제사가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하는 일이 온전하지 않고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 연약함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번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25절).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레위 제사장들보다 더 나은, 사실 비교할 수 없이 나은 제사장이 되십니다.
이 사실은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고 예수님께 머물러 있어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사실 이런 온전한 제사장을 떠나서 다시 불완전한 제사장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더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고 항상 살아계셔서 더 이상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다면,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이 놀라운 일을 기억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