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후에 아브라함에게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에게 약속하신 복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자식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브라함은 ‘불가능’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상속자가 될 것을 다시 분명히 말씀해 주시면서 그에게 하늘의 별을 보여 주시고 그의 자손이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어떤 일이 있을지도 알려주시면서 언약식을 통해 언약을 공식화 하십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언약식의 모습입니다. 짐승을 쪼개 두고 그 사이를 다니면서 언약을 맺는 것은 고대의 방식이었습니다. 언약을 지키는데 있어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짐승을 준비하고 그 중간을 쪼개 두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난 것은 하나님 뿐이셨습니다(17절). 즉,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는 우리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조급함이 보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자기 종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바로 이어지는 16장에서는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기도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느긋하십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으실까요? 우린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루시고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니까 조급해 하는 것이 당연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급해 하는 대신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사실을 내가 알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으면 조급해 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