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은혜 아래에서 의의 종으로 살기

최종혁 · 2024.04.22 · 로마서 6: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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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자는 이제 은혜 아래 있으니 마음껏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참으로 ‘우리’다운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중심으로만 생각하며 무엇이든 우리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왔고, 그것을 구원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이제는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우리가 죄의 종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 마음껏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마음껏’ 죄를 짓는다는 것은 스스로 다시 죄의 종이 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면서 동시에 은혜 아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이제는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래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기차와도 같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은 거룩함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실패하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빼먹을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의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칭의는 언제나 과거입니다. 영화는 언제나 미래입니다. 그리고 성화는 언제나 현재입니다. 그래서 성화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화가 칭의라는 사건을 우리가 경험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고 또한 영화라는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것을 보증합니다. 우리의 과거에 대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바로 현재의 삶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 현재의 삶은 다름 아닌 은혜 아래 있는 삶입니다. 죄의 종으로서 사는 삶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는 삶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사랑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삶입니다. 만약 내 삶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내가 은혜 아래 있지 않고 죄의 종으로서 사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래도 어차피 은혜 아래 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영생을 향해 가는 자는 죄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19절)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바로 알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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