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길로 행했었던 좋은 왕이었었습니다(2절). 특히 그는 성전을 수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회복하는데 힘썼었습니다(13-14절). 문제는 이 모든 일과 그에 대한 평가에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라는 상황이 조건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2, 14절).
15절에서 이 상황이 변했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관료들이 요아스를 찾아와서 여호야다와는 다른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경고했을 때는 백성들에게 명령하여 성전에서 그를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무엇이 요아스를 이렇게 달라지게 했을까요? 상황이 달라진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절대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상황은 오히려 요아스의 본 모습을 드러낸 것 뿐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앙이 없었고, 그것이 여호야다의 사후에 표면에 드러난 것입니다. 요아스에게는 신앙의 결과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상을 배척하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회복했던 것은 당시에는 분명 참된 신앙의 결과물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요아스 자신도 스스로 참된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영적 아버지와 같았던 여호야다가 떠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에게 애초에 참된 신앙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악행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람 군대를 통하여 그를 치셨고, 요아스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채로 돌아왔다가 반역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25-26절).
안타깝지만 오늘날에도 요아스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을 보면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잘못된 확신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믿음을 붙들고 믿음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내 신앙을 지켜주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믿음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음에 어떤 조건이 붙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로 행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대하 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