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시야는 16세에 즉위하여 52년 간 유다의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런 시대에 통치 기간이 길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으로 통치했다는 단적인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웃시야는 군사적으로 유다를 강력하게 해서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앗수르로부터 유다를 잘 보호하였습니다. 외적으로 나라가 안정을 취하자 내적으로도 풍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 유다가 가장 강성하고 부요했던 때가 바로 웃시야 왕 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에 웃시야는 교만해졌습니다(16절). 그는 이방 신을 섬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왕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성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 했던 것입니다. 성전의 뜰에 들어가는 것은 유대인 남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향은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해주신 법이었습니다(18절; 민 16:40).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성소에서 분향하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었고, 혹 제사장들이 모두 찬성한다고 해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웃시야를 막아섰지만, 오히려 웃시야는 분노했고, 이 때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셔서 나병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19-20절).
웃시야가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분향을 드려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이 가져온 교만은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교만이 찾아온 것은 그가 그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다니엘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 나라의 영광을 보면서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교만하게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들의 짐승같이 만드셔서 7년을 짐승처럼 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며 원하는대로 그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단 4:32). 웃시야도 아마 그의 남은 생을 나병환자로 살면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형통한 삶에는 항상 교만이라는 함정이 숨어있습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고백처럼 주시는 이도 여호와시고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무엇 하나도 가질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이 말을 늘 기억하기 원합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오늘의 한 구절: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