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듣기 좋은 말보다 들어야 할 진리

최종혁 · 2026.04.07 · 역대하 1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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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좋은 말은… 듣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계속 듣고 싶습니다. 문제는 듣기 좋은 말이 항상 좋은 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해주는 말도 그 의도와 관계 없이 나에게는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합 왕의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선지자’라고 불린 이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합 왕이 좋아할 만한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왕에게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길르앗 라못을 치고 싶어했던 아합은 또 다시 이 ‘선지자’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답했습니다(5절).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왕이 그것을 원한다는 것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라는 선지자는 달랐습니다. 아합의 말에 따르면 미가야는 항상 좋은 말은 하지 않고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그를 미워했습니다(7절). 그에게 묻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왕의 신하는 미가야를 데리고 오면서 다른 선지자들처럼 좋게 말할 것을 권했습니다(12절). 하지만 미가야는 단호했습니다. 그는 진실한 것만 말하겠다고 했고, 아합 왕에게 가서 이번 전쟁에서 그가 죽게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에 다른 선지자가 그의 뺨을 때렸고, 아합 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전쟁에 나섰지만, 결국 미가야의 말대로 그 전쟁에서 그는 “무심코” 당긴 활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33절).

400명의 선지자에 비해 미가야가 어떤 일을 예측하는 면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가야가 달랐던 것은 사람이 듣기 싫어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정직함과 용기였습니다. 그가 미워했던 미가야의 말을 들었다면, 아합은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말씀해 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심지어 나에 대한 공격처럼 들릴 때도 있습니다. 나를 죄인이라고 하고 멸망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세상은 내가 듣기 좋은 말을 해줍니다. 나에게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말이 듣기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짜 좋은 말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릴 향한 진실된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아합은 활에 맞아 죽어가며 그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기회가 있습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 삶에 진정한 행복이 함께 함을 믿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대하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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