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신 죄가 있다면 바로 ‘종교적 외식’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전반에 걸쳐서 이런 모습은 계속해서 드러나지만, 특히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얼마나 예수님께서 외식을 미워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라며 화를 선포하셨고, 그들을 “뱀들”,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종교적 외식에 대해서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은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다(21절). 이것이 종교적 외식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말은 하면서 행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에게는 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둑질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그 자신이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서 정말로 도둑질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도둑질을 합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일은 하지 않지만,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종교적 외식은 항상 이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서 회칠한 무덤, 평토장한 무덤이라고도 표현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서 겉보기에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평토장한 무덤은 무덤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평평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래는 마찬가지로 더러움이 가득합니다. 외식하는 자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외식을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셨던 이유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23-24절). 다른 죄들은 하나님을 부정하면서 범해진다면, 외식은 말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범해집니다. 그래서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임을 자랑하고,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있으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이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유대인은 아니었습니다(25-28절).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이기 때문입니다(29절).
본문 말씀은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줍니다. 누군가는 참된 믿음도 없으면서 이런 종교적 외식에만 빠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의롭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이런 외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행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외식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전에 나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내 마음에 심고 내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가 있고, 그럴 때 노력 자체가 마치 외식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외식과 다릅니다. 외식은 어떤 이익을 위해 마음에 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진정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은 외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