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해심 많은 할아버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최대한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아주 가끔씩 부드럽게 꼭 필요한 충고만 해주는,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할아버지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죄를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에게 진노하십니다.
죄에 대해서도 우리는 오해합니다. 우리 기준에서 뭔가 나쁜 일을 하는 것, 흉악한 일을 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롬 1:29-31)에 보면 그런 것들이 상당 수 죄로 언급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들이지 죄의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분명 보이지만 하나님 알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에 피조물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면, 그것이 우상이고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돈이 놓이면 탐욕의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미움이 놓이면 분쟁과 살인의 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놓이면 교만과 자랑이 드러납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자리에 놓이면 그것이 여러 죄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 죄의 본질에 있고, 하나님은 그런 죄인에게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죄인을 이런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지신 일입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죄인을 대신하여 의인으로서 심판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끝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해심 많은 할아버지’셔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자라도 또 다시 삶에서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앉게 하는 죄를 범한다면 그때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시는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를 좋아하고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분노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매일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죄와의 싸움은 외롭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인내하시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한 구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