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서 어쩌면 가장 뜻밖의 사건이 오늘 본문인 것 같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부터 좋은 동역자로 여러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 함께 힘썼습니다. 아니, 사실은 바울이 구원 받은 후에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교제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때 그를 도와 주었던 사람이 바나바였고, 안디옥에 교회가 생기고 일꾼이 필요할 때 바울을 그곳으로 데리고 왔던 사람도 바나바였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진리를 위해 두 사람은 함께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졌으니,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말씀입니다.
두 사람은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워졌던 교회를 다시 돌아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발생했습니다. 요한은 1차 전도여행 당시 두 사람과 동행했지만 버가에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 13:13). 그 요한을 바나바는 함께 데려가자고 했고 바울은 버가에서의 일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사실 더 많은 정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판단이 더 옳았는지를 분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겉으로 보기로는 바나바는 위로와 격려의 은사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요한을 다시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고, 바울은 그렇다고 해도 충성스럽지 못한 모습을 이미 보였던 사람을 중요한 일에 동행시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다 잘못된 근거를 가지고 비성경적인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바나바가 단지 요한이 조카라는 이유로 자격 없는 사람을 동행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울도 자기 의가 가득해서 요한을 이유없이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가능한 의견입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진리가 아닌 ’내 의견’에 목숨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진짜 목숨까진 건 것은 아니지만,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습니다. 각자가 원하는 사람을 데리고 따로 길을 갔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간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꼭 두 사람이 함께 다녀야만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과정입니다. 두 사람은 의 견을 조율하고 하나된 뜻으로 따로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 아닙니다. 의견 충돌로 다투고 갈라섰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들이 작은 의견 충돌로 틀어지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크게 상관 없는 것들인데, 그 의견이 ‘나’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고 그 의견에 대한 반대를 ’나’에 대한 반대로 받아들이면서 일이 커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의견이 절대로 지켜야 하는 성경의 진리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연약한 우리에게 종종 발생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 의견으로 하나되어야 진정한 하나됨을 이룬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뭔가 의견 조율이 잘 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생각으로 하나되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내 생각을 좀 더 주님의 생각에 맞출 수 있게 하는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의견보다 하나됨 자체가 더 중요하기도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하나됨을 지켜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화평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