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동역자의 수고를 귀하게 알아주는 마음

최종혁 · 2024.09.16 · 빌립보서 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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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편지에는 항상 동역자들이 언급됩니다. 어찌보면 ‘성경’에 굳이 이런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나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나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도 알 수 있는 정보가 좀 있지만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나보다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29절을 보면 성경이 왜 그들의 이름을 기록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빌 2: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바로 수고한 자들을 존귀히 여기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주 안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알아줄 것을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주 안에서 수고하는 자들 중 누구도 자신의 수고를 남들이 알아주고 자신을 귀하게 여겨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고하지는 않습니다. 성경도 그런 모든 일을 당연한 것으로 명령하지, 뭔가 특별한 것으로 권유하지 않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다 주 안에서 수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고하는 성도도 뭔가를 바라고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다른 성도의 수고를 알아주고 격려할 것을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16:18; 히 10:24 등).

이런 모습은 결국 주님께서 우리들의 수고에 대해서 보상하시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한 수고를 마땅한 것으로 여겨야합니다. 주님의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명령 받은 모든 것을 다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고 진심으로 말해야 합니다(눅 17:10).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그럼, 당연하지. 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주를 위해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사람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42).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마 25:23).

이런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의 교회 안에서도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 각자는 은사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성도의 모든 수고에 대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된다고 해도 그 수고에 감사해야 합니다. 서로를 알아주어야 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격려해야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이런 성경의 말씀에도 순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는 내 수고는 크게 보고 남의 수고는 작게 봅니다. 그래서 내 수고를 남아 알아주지 않으면 너무나 서운하고, 반대로 남의 수고는 그게 그렇게 알아주어야하는 일인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이 역시 자기 중심성이란 죄와의 싸움입니다. 나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남의 수고에 감사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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