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어려워진 세상에도 멈추지 않는 복음

최종혁 · 2024.08.21 · 사도행전 16: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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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있지만 종교에 대한 시각은 오히려 부정적으로 변했고, 사람들도 더 마음을 닫고 있습니다. 과거 직장에서도 복음을 많이 전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만 봐도 복음 전하기 ‘쉬웠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없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영혼들이 구원 받고 그랬던 때는 사실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핍박을 받으셨고 제자들도 그러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5:18-20). 실제로 사도들을 비롯한 초대 교회는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매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기록하는 목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많이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당시 성도들이 복음으로 인해서 당했던 고난은 우리가 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구원 받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사건을 위주로 사도행전이 기록되었기 때문이지, 실제로는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 전하기 쉬운 혹은 좋은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어떻게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음 전하기 쉬웠던 과거’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라고 해서 복음 전하기가 정말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라고 복음 전하기만 하면 다 구원 받고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다들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무릎쓰기도 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구원 받는 자들을 더하셨을 뿐입니다. 복음 전할만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게‘ 했었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더 ’지혜롭게’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럼 지금 나는 계속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바울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의 계획을 막으실 때도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명령이었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계획을 세웠지 복음 전하는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빌립보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을 때도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를 찾다가 기회가 되었을 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옥문이 열렸을 때도 도망할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복음 전할 것을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전보다 복음 전하기 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기는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혼의 문제에 더 무관심하고 배타적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온 문화, 철학, 사회 체제, 가치관 등 모든 것이 점점 더 성경과 멀어지고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내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쉬워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며 우리의 간절함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영혼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언제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더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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