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는 믿음 안에 있는가

최종혁 · 2024.07.19 · 고린도후서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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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방황(?)을 하던 중학교 2학년 어느날 밤 이 말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었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이 말씀에서 두 가지가 계속해서 제 마음을 흔들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을 내가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버림 받은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버림 받은 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지 모르겠었습니다. 확신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말씀에 따르면 확신이 없다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무언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를 수 있지만, 경험한 사람은 모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 답답하고 갑갑했습니다. 교회에서 하라는 것은 다 한 것 같고, 솔직히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갑갑했고 한편으로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배워왔던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던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나의 이야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의 창조주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았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도 죄인입니다”라고 말했지만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자인 것을 알았지만 나의 구원자로서 영접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저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나서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평생을 교회 안에서 살았고 어디서든 말씀의 원리에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느낄 수 있는 차이는 제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줄 이제는 내가 알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5절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여럿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그를 비방하고 모함하던 그 고린도 교회 안의 사람들도 참으로 구원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거의 2천년의 시간동안 특히 저와 같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어 왔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동시에 교회 안에 있지만 믿음 안에는 없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의 자녀들이 떠오릅니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구원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합니다. 적극적으로 거절하지는 않지만 동시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더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합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해봅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하셔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더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 며칠전 들었던 염평안 형제의 찬양 가사와 같이 기도합니다. “주님, 이 아이들을 만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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